
1592년 한반도에 전쟁이 터졌다. 조일전쟁이다. 헌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임진왜란(亂)이라 격하했다. 감히 상국이 우리나라를 도와주러 와 피를 흘린 싸움인데 어찌 조선과 일본이 붙은 전쟁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전쟁터가 된 한반도에서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이 맞부딪친 국제 전쟁인데 란(亂)이라 칭하면서 스스로 기었는지 모르겠다. 겸손도 과하면 보기에 딱하다.
1950년에도 전쟁이 터졌다. 당시 전쟁을 수행한 위정자들은 '6.25 동란'이라 불렀다. 분명 유엔 16개국이 참전하여 중공, 소련, 북한 연합군과 벌인 국제 전쟁인데 동란이라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같은 듯 다른 전쟁이지만 맥을 같이 한다.
조일전쟁과 한국전쟁

일본군이 휩쓸고 지나간 국토는 황폐했다. 백성들은 죽고, 다치고 끌려갔다. 의주로 몽진 떠난 임금이 한양으로 돌아왔지만 들어갈 집이 없었다.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간 임금을 향하여 '백성 버리고 떠난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며 저주를 퍼붓던 백성들이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을 불살라 버렸기 때문이다. 월산대군 후손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갔다. 경안궁이다.
전쟁이 끝났지만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사대부들은 공황에 빠졌다. 이들의 빈 공간을 채워준 것이 '재조지은(再造之恩)'이다. 무너지는 나라를 다시 세워준 명의 은혜를 받들어 모시자는 것이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넙죽 절하며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한 자가 이들의 유령이 빙의됐는지 모르겠다.
조선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일전쟁에 참전한 명나라의 속내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경구를 중국 사람들은 존중한다. 국익이다.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군대는 적극적인 전투를 피한 채 기회를 엿보았다. 휴전이다.
의병들의 결기를 꺾어 버리고 분전하는 이순신 장군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은 '항미원조(抗米援朝)'라고 명분을 내세웠다. 조일전쟁과 한국전쟁, 시공을 뛰어넘는 전쟁이지만 일맥상통한다.
'백세청풍'

서울 종로구 청운동 왕회장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오른쪽에 자그마한 단독주택이 있다. 그 집 울타리 안쪽 바위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안내판이 길바닥에 누워 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곳은 김상용이 살던 곳이다. 원래 대명일월 백세청풍(大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