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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조선과 2017년 한국... 왜 소름끼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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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1월. 12만 청나라 군사를 맞아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조선은 바람 앞의 등불(風前燈火)처럼 국채가 위태로웠다. 청나라 군사는 단순 군대가 아니었다. 귀신 잡는다는 팔기군이었다.


남한산성 행궁에 은거하던 인조는 청나라와 강화조약을 맺기 위해 밀사를 내려보냈다. 조선인 세작을 풀어 1만 3천여의 오합지졸로 꾸려진 조선군의 군세와 한 달분의 식량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청군은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구축하고 느긋했다.

  

조선은 세자가 내려가서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성안을 꿰뚫어 보고 있는 청나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임금이 내려와서 항복하라는 것이다. 한계점에 이른 조선은 임금이 내려가면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청나라는 쾌히 승낙하면서 10개 항목의 조건을 내걸었다. 병자호란 강화조약이다.

 

사실, 청나라는 조선 땅이 탐이 나서 조선을 침략한 것이 아니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명나라와 일전을 벼르고 있는 청나라는 명나라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조선이 뒤통수를 칠까 봐 그것이 염려스러웠다.


수군(水軍)이 약한 자신들에게 불과 40여 년 전,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군 함대를 궤멸시킨 이순신의 후예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힘을 낭비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격상하라고 조선에 요구했지만 명나라를 아버지 나라로 떠받드는 척화파들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동정(東征)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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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내건 강화조약 10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1.조선은 청나라에 군신(君臣)의 예(禮)를 지킨다.

2.조선은 명나라와 관계를 끊고 명나라 연호를 폐한다.

3.조선은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誥命)과 책인(冊印)을 내놓는다.

4.조선은 장자와 제2자 및 여러 대신의 자제를 심양에 인질로 보낸다.

5.조선은 성절, 정조, 동지, 천추, 경조 등의 사절은 명나라 예에 따른다.

6.조선은 청나라가 명나라를 칠 때 출병(出兵)을 요구하면 어기지 않는다.

7.조선은 청나라 군이 돌아갈 때 병선(兵船) 50척을 보낸다.

8.조선은 청나라 내외 제신(諸臣)과 혼연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한다.

9.조선은 성(城)을 신축하거나 성벽을 수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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