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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5월 역사가 연출한 막장드라마에서 영조는 악역을 연기한 배우다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난 영조는 출생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거기에다 경종 독살에 노론당에 코가 꿰여 연산이나 광해처럼 축출 위협과 암살 악몽에 시달렸다.
노이로제 상태에 빠져 있던 영조가 51세 연하 15살 신부를 맞아들여 젊은 몸을 통하여 회춘과 환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결국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권력에 희생된 사도세자는 나쁜 사람으로 기록된 역사적 사료가 많지만 며느리 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어린 여자를 왕비로 맞아들여 위계질서를 깨트리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아들을 죽인 영조는 제왕은 무치(無恥)라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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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5월 역사가 연출한 막장드라마에서 사도세자를 죽인 사람은 정조다
경종 독살에 깊숙이 개입한 영조는 자신의 핏줄이 자기의 대를 이어 등극하지 못하면 자신은 노론당으로부터 '왕위가 탐이 나 형을 죽인 대역죄인'으로 팽(烹)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버지 숙종시대, 붕당정치의 폐해를 잘 알고 있던 영조는 탕평책을 썼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올바른 정책이었다. 허나, 기득권을 쥐고 있던 노론당은 빼앗기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세자 시강원 시절. 소론계열 스승들로부터 진보적인 공부를 한 사도세자가 등극하면 노론은 몰락한다고 생각한 집권여당은 영조에게 세자를 내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노론당으로부터 아들을 죽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던 영조는 노론의 요구를 거절하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절박한 위기에 처해있던 영조에게 세손 정조가 없었으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는 평생 아버지에 대한 업(業)을 지고 살았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태어난 집복헌 근처에 영춘헌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평생을 맴돌다 그곳에서 죽었다. 명분은 독서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업을 닦으며 살았다. 정조는 조선역사 중, 몇 안 되는 성군이지만 무서운 사람이다.